IDK

냅_다 팀 <IDK>
23.06.05(MON)~23.06.30(FRI)
이것은 팀의 이름과 같이 정말 ‘냅다’ 저질러 버린 것들의 모음일지도 모른다.
팀원인 두 명의 성향은 완전히 반대되지만, 이끌림을 받아들이는 감각은 꽤나 닮았다. 이를테면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고자 하는 것들의 준비가 충동적이라는 것에 대해서라든지.
가끔 둘이서 왜 이런 생산성 없는 것들을 지속하며, 무엇을 남기기 위해 이를 이행하는지에 대해 물어보곤 했다. 거슬리는 감각이 계속 꼬리 길게 남는다. 눈에 거슬리는 것, 그냥 지나가면 되는 걸 왜 계속 집착하게 되는 걸까? 결국 이 둘의 진행은 각자의 행동이나 감각의 시작점이 되고 빙글빙글 꼬리잡기하듯이 다시금 돌고 돈다.
이 거슬림이 어떤 새로움이라고 정의를 내리는 것이 좋을까? 더 이상의 새로운 감각을 찾다 찾다가 결국에 불쑥 다가온 충동적인 거슬림에 종착한 것이라고 보면 되련지, 이러한 감각을 눈앞에 꺼내게 만들어내는 것이 결국 두 명에게는 새로움의 갱신이라 할 수 있겠다.
아무것도 아니면서, 이게 그래서 뭔데? 싶은 감각이 갑자기 나를 끌어당기는 것, 갑자기 하나의 형태에 이끌리는 것. 그것을 시각적으로 나타낼 수 있게 몸을 만들어줄 때, 그 자체가 가지는 의미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다시금 곰곰이 고민하게 된다. 무언가를 느끼고 다르게 바라보고 이행하는 것은 전시장이라는 공간과 만나 다른 감각으로 치환할 가능성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선 김지현과 권채은이 만드는 충동물들은 큰 이유를 가지지 않는다. 치우림이라는 공간을 보고 느낀 감각과 본인이 각자 꽂혔던 무언가에 심취해 만들어낸 것들이다. 이것이 현대미술계에서 과연 ‘새로움’이라는 담론에 부합하는지, 본질이라는 것에 부합하는지는 천천히 고민해보겠지만 그저 이 자체는 두 사람의 감각의 사유에서 튀어나온 어떤 것들이며, 이상한 감각에서의 확신이기에 치우림이라는 특징이 강한 공간 속에 녹아들며 가지는 작품들의 모호한 범위 속 각각의 의미 생성과 그에 따른 변화를 알아보기 위해 던져보는 실험적 도전이다.

IDK-Naep_DA(김지현, 권채은)展_예술공간 치우림_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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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을 하면서 항상 중점을 두는 것은 ‘무언가를 보기’이다. 다르게 보는 것은 그것을 자세히 고민할 수 있는 감각과도 연결되어 있기에 작품은 바깥으로 나오게 되며 그러한 장치의 역할을 가지기를 바란다. ‘일상’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들어맞는 ‘집’을 이용한 치우림의 공간을 봤을 때, 갑자기 파바박 하고 무언가가 떠올랐었다. 공간의 의미가 달라졌지만 이 공간이 가지는 과거와 현재의 시간선에 집중하여 본 공간을 보고 떠오른 표현을 1번으로 생각하였고, 그에 따라 오래된 집에서의 흔적과 어떠한 움직임. 이동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마치 스토리를 짜는 것처럼 아무도 없는 공간 속에서 움직이는 비물질적인 게 있다면? 그것의 이러한 흔적이 남겨지겠지, 어떠한 이동 형태를 가졌을까 등을 상상함에 집중하였다. 이제 의미를 달리한 공간에서 감각물은 함께 작품이라는 가치로 변환되며 모호한 경계를 가진 채 전시장 이전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게 하면서도 전시장 내부의 현재 발생하는 이동과 움직임까지 연결된 ‘보는’ 장치로서도 사용될 것이다.
■김지현
이 짓거리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 나는 왜 이 짓거리를 하고 있는가.
작품은 수많은 '짓거리'들의 결과물이다. 그저 길거리에 내놓으면 그냥 쓰레기나 종잇조각 하다못해 소음 정도로 구분될 것들을 작품이랍시고 공간에 놔두는데, 결국은 흩어져있던 짓거리들이 한 군데에 모여 있는 것에 지나지 않은가. 다만 우리는 어떻게 하면 이것들이 조금 더 발칙한 '짓거리'가 될 수 있을지 고민할 뿐이다.
그래, 이 짓거리들에게 어떤 고상한 이름을 붙여서 작품이라고 해 보자. 우리는 작품을 왜 만드는가.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어떤 것을 이루고자 하는가, 작품은 우리에게 혹은 너희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가. 100명이면 100명 모두가 다른 답을 내놓을 질문이지만, 결국 그래서 왜 인지, 하나로 관통하는 대답이 있을 것만 같다. 그 대답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며 질문을 거듭하다 보니 그 대답 보다는, '짓거리'에 대한 고찰과 통찰만이 남았다. 짓거리를 모아 짓거리들, 짓거리들을 고찰하는 짓거리, 그 짓거리를 모아 만들어진 전시. 나는 이 수많은 그리고 반복되는 짓거리의 노이로제에 그만 질려버렸다. 나 혼자 고통받을 수는 없지. 여기 나의 짓거리들과 짓거리적 생각들을 공개하겠다. 이를 보는 모든 이들이 이 짓거리에 대해 질릴 때까지 고찰하고 논의 해 보았으면 좋겠다.
■권채은